페미니스트 뜻·어원은?
여성 권리·성평등 주장 사회운동…워마드·메갈 남혐 문화로 왜곡
페미니스트는 성차별, 남성 중심 문화로 인해 여성이 억압받는 것에 저항해 성 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했다. 그동안 남성이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최근 워마드, 메갈리아 등 일부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혐(남성 혐오) 문화로 왜곡돼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주의/여권주의를 뜻하는 단어로서, 영어로는 feminism이라고 표기한다. 다만 현대에는 여성 인권보다 성 평등 사상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조되면서 페미니즘은 여성주의라고 번역하기보다도 성평등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어디까지나 여성이 억압받는다는 것을 가정한 상태에서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남성이 받는 차별이나 (징병제에 대한 태도가 가장 좋은 예이다. 후술) 전체적으로 어느 성별이 차별받는가를 따지지 않고 여성에게 불리한 부분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성평등주의와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또한 여성의 관점에서의 평등으로의 접근이 문화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남성에게도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으므로 애초에 학문의 성립부터 남성의 관점을 배제하는 페미니즘을 성평등주의로 치환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19세기 초, 여성 참정권의 인정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여성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성의 권리 확장과 성차별적인 대우의 타파를 통해 여성해방과 성평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1] 한국 내부에는 1970년 말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국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데 일조하였으며 1980년 중엽에 발전하였다.[2]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성장에 따른 문제로, 운동권들의 활동에서 파생되어 급속성장한 이러한 페미니즘은 자본가를 노동자의 적으로 보는 마르크스 주의에 편승하여 남성을 여성의 적으로 보는 병크를 저지르게 되었으며 현재에도 페미니즘 내부에는 이러한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도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으로, 한국 페미니즘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남녀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 투표권, 여성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여성이 남성과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권리, 아동과 노약자 보호, 성폭력 예방, 올바른 성교육(ex;남성이여 강간하지 마라(Men! Don't rape!), 환경보호, 사회복지, 노동환경 개선 등 폭넓은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다. 학계에서는 학제간 연구의 일환으로 여성학 협동과정 등의 정규과정을 통하여 활발하게 탐구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는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3]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 (그 자유주의자 밀이 맞다)이 꼽히며,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 등이 있다.
최근에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페미니즘이 성평등주의로 호도되고 그 결과 성역화되어 일체의 반론을 거부하며,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주장을 성차별주의자 혹은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페미니즘계가 저지른 각종 문제는 페미니스트와 관계없는 페미나치의 소행이라며 꼬리를 자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면 꼴마초혹은 反 페미니스트로 몰아 상대방을 마녀사냥하고 명백한 잘못을 옹호하거나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사건에 무조건적으로 여성편을 들어주는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 외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게임즈 게이트사건이 있으며 국내의 사건으로는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도한 경희대 교수 성폭행 무고 사건이 있다.
역사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투표권,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 등 법률적 권리의 획득과 관련된 투쟁. 울스턴크래프트,해리엇 밀 등이 이때의 인물이다. 공리주의 하면 떠오르는 존 스튜어트 밀도 이 쪽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의 사상을 종합해서 흔히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린다.
2.2. 제2기
20세기 초에서 1970년에 걸친 운동으로, 단순히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평등. 그리고 남성 유명 대학에의 입학 권리, 중절합법화와 시민권 운동의 일환으로 행해진 운동이다.
2.3. 제3기
이전과는 달리 여러가지 분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서구, 백인, 중산층 여성 등의 권리뿐만 아니라 제 3세계, 제 3, n개의 성 등의 담론에 도달하면서, "여성"뿐만을 아니라 "권력관계"와 "구조적 억압" 자체를 지적하는 살짝 신좌파스러운 사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3. 페미니즘의 분파
범위가 매우 넓으며 폭넓은 사상답게 수많은 분파가 있어 페미니즘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단 하기된 분파들은 서로 공유하는 이론도 있고 공유하지 않는 이론도 있기 때문에 특정 분파의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다른 페미니즘과 완벽히 분리된다고 여기는 것은 편견이다.
그 특징에 따라 크게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에코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 등으로 나뉜다. 흔히들 페미니즘이 진보적 사상이라고 불리고, 그와 반대로 몇몇 보수적인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황당한 짓을 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나키즘처럼 페미니즘 자체가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범주에서 존재한다고 보면 간단하다.
3.1. 리버럴 페미니즘(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페미니즘의 원류이며 존 스튜어트 밀 부부에 의해 정립되었다. 남녀평등은 법적 수단으로 실현가능하며, 집단으로서의 남성과 싸울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성적 고정관념, 여성멸시, 여성의 일에 대한 저임금, 임신중절에 관한 제한 등을 남녀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이 서로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진 않는다. 투표와 법테두리내의 사회운동을 강조한다.
이들도 분파가 나뉘는데 역차별을 허용하냐 안하느냐에 따라 복지-리버럴 페미니즘과 고전-리버럴 페미니즘으로 나뉜다.
환경결정론을 지지하고 여성성을 부정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남녀 모두 서로간의 장점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리던에 대해 메리 델리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남성화한다고 비판한다.
한때 레즈비언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레즈비언 단체로부터 비판받기도 했지만 최근 리버럴 페미니즘 측에서 레즈비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많이 수그러들었다.
대표적 사상가로 베티 프리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해리엇 테일러 밀, 존 스튜어트 밀이 있다.
3.2.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자본주의가 여성을 억압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남녀 불평등을 결정하고 있으므로, 여성 해방의 방법으로서 자본주의의 해체에 촛점을 맞춘다. 혁명이 핵심.
다른 페미니즘과 달리 의외로 남자인 엥겔스가 많은 공헌을 했다. 엥겔스는 과거 모계사회였던 인류는 농업을 통해 부계사회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최초로 주장했다. 그는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해 남성의 여성억압의 원인을 남성이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산계급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사유재산의 제거로 보았다.
아무튼 이 때문에 마르크스 주의와 페미니즘은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반공운동에서는 좌파 페미니즘도 공산주의와 한데 묶어서 공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계통에서는 "자본주의≒가부장주의" 정도로 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병폐도 페미니즘으로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녀간의 억압관계 역시 계급 갈등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3.3. 래디컬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사회는 전통적이고 압박적인 가부장제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으며, 표준적인 성 개념은 가부장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가부장제의 폐지가 여성의 해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성역할의 폐지를 주장하며 공적 영역 만이 아니라 가정이나 남녀 관계를 포함한 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인간(man)이라는 말에 잠복해 있는 남성 중심성을 재검토한다.[4]
어머니에 대한 이들의 주장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오클리에는 어머니라는 개념이 가부장제의 구성물이라고 주장하고 파이어스톤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기 위해 어머니라는 개념을 고안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트리엔 리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의 육아로부터의 해방을 들었다.
또한 여성의 성적 쾌락의 해방, 강제 이성애에 대한 비판, 레즈비언의 권리 획득, 성적 폭력 및 호색문학에 대한 규탄을 실시한다.
대표적 사상가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밀렛 등이 있다.
이쪽 사람들 중 일부가 트랜스포비아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MTF 레즈비언은 사실 이성애자 남성과 똑같다는 둥. 이런 이들은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라고 불린다.
3.4. 사회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에, 래디컬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그 둘 모두 여성억압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소위 '이중구조'의 억압이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밝혀내고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가부장제를 동시에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5. 컬츄럴 페미니즘
이 문서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컬츄럴 페미니즘을 전혀 다른 분파로 나누어 놓았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대표적으로 로즈마리 통) 앞서 소개된 래디컬 페미니즘을 자유의지론적 관점에서의 래디컬 페미니즘, 컬츄럴 페미니즘을 문화적 관점에서의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보아, 이 둘을 모두 (광의의) 래디컬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로 묶기도 한다. 이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차이[5]이므로 참고 바란다.
차이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컬추럴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개성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는 특별하고 축복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친절하고 상냥하므로, 여성이 세계를 지배하면 전쟁은 없어진다."는 등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감정 자체의 단점이 획일적이라는 것을 봤을떄 저 위의 주장은 정말 그럴지는 알수없다. 애시당초 여성성을 찬양만 할뿐 중립적인 시선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이 페미니즘 이론은 남녀 사이에 생물학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프로이트를 포함해 기존에도 남녀의 차이에 주목한 설은 있었지만, 당시엔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워낙 강했던지라. 대부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컬추럴 페미니즘은 남녀의 차이를 우열이 아니라 '다름'으로 보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컬츄럴 페미니즘은 현재의 문화는 지나치게 남성적이므로 여성의 관점으로서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컬츄럴 페미니즘은 래디컬 페미니즘으로부터 남녀의 차이를 인정해 기존의 성역할을 고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진 엘쉬테인은 이들의 남녀 구별논리가 과거 제국주의시대의 민족 구별과 비슷하며 이들의 주장 속에는 여성 속의 추악한 남성성을 감추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있다고 주장했다.
사족으로 이성끼리의 성행위는 근본적으로 억압이기 때문에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이 모두 레즈비언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이것은 성 지향성은 후천적이라고 하는 걸 지지하는 셈이니 자기네들이 스스로 성소수자를 엿먹이는 셈.
3.6. 스피리츄얼 페미니즘
이 페미니즘은 여성성에 자연과 연결되는 신비성이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사회사상이라기 보다는 종교나 오컬트 성이 강한 것이다.
"고대에 모권제 사회에서 부권제 사회로의 이행이 있었다"는 등의 주장이 스피리츄얼 페미니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여성 버전이란 비판을 받는다.
3.7.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 'N개의 성'담론이나 '옷장'담론이 특히 유명하다. 모든 인간이 독자적인 젠더를 가지며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분리하는 것은 부조리함을 지적한다. 느낌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모두 퀴어하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여성성과 남성성은 결국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로 덮어씌워진 것으로 본다. 또한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등의 억압의 실재가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는 다르게 화장이나 옷차림을 '일부러' 더 신경쓰는 식의 방식으로 성에 관련된 이데올로기들을 조롱하는 실천을 하게 만든 기반이 된다. 이런 해결방식은 장 보드리야르 식의 해결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의도는 어쨌든 남성사회에 순응하라는 식으로 비추어져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기 딱 좋다(...) 항목참조. 억압의 주체에 대한 관점 역시 좌파 페미니즘 입장에서 보면 딱 "너네 저항 무쓸모"로 보일 여지가 있기 때문에(...).
3.8.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즘
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식민지라는 특수환경을 고려하여 여성 억압을 보는 관점.
국내에서는 주로 위안부, 양공주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민족주의 계열 활동가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 주로 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3.9. 에코 페미니즘
남성=제국=과학기술=문명, 그리고 여성=자연이라는 인식 하에 환경을 파괴하는 거대자본 및 물질문명과 이를 주도하는 남성집단이 여성을 억압하며 자연을 여성과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자연도 억압한다고 본다. 과학을 거부하고 어머니 자연과 미신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다나 시바로 인해 유명해졌다.
카렌 워렌은 남성중심적 사회인 인디언 수 족이 자연친화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어 에코페미니즘을 공격했다.
3.10. 성적 차이 페미니즘
성차(sexual difference)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린다.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의 여성학자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에 의해 주창된 분파이다. 대충 컬츄럴 페미니즘에서 주장한 남성-여성간의 특유한 차이를 인정하되 컬츄럴 페미니즘의 다소 나이브한 면들을 제거하고 대신 그 부분들을 언어학적, 사회구조적,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대체했다. 느낌상 컬츄럴 페미니즘 +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도로 보면 된다.
이리가레의 이론은 첫째,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둘째, 여성성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셋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간주체성을 탐구하는 데로 나아간다. 성적 차이, 혹은 성적 차이의 윤리라고 할 때는 이 셋째 측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인데,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도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이 여성성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지점이 성적 차이 페미니즘과 컬츄럴 페미니즘을 나누는 부분이기도 하다. 컬츄럴 페미니즘이 기존에 있는 여성성을 긍정하는 경향을 지니는 반면, 이리가레는 기존의 여성성을 남성에 의해 규정된 여성성이라고 보아, 여성에 의한 새로운 여성성의 발견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와 전국학생행진 정도가 성적 차이 페미니즘을 따르는 편이며, 여성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여/성이론>에서도 종종 이리가레의 이론이 소개된다.
3.11. 우머니즘
복합문화 페미니즘의 분파이기도 하며 블랙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 마틴 루터 킹과 맬컴 엑스가 한창 활동하던 무렵에 태동하였으며 미국의 시인 앨리스 워커에 의해 제시된 분파이다. 1960년대 당시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철저히 중산층 이상 백인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백인 여성보다 열등한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먼저 얻은 데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과는 성장 배경부터 다른 흑인 여성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었다.
우머니즘 계열에서는 미국에서 흑인여성에게 행해지는 억압을 예로 든다. 그들은 미국에서 흑인여성은 먼저 백인여성에게 "흑인"으로서 억압받고 과거 인종차별에 대한 복수로서 백인여성에 대해 성폭행을 자행하는 흑인남성들이 백인여성을 흑인여성보다 더 상위인 것으로 봄으로서 일종의 도구로 취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머니스트들은 이 사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는 성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종간, 계급간의 문제들도 성문제와 차별됨이 없이 동등하게 고려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4.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편집]
4.1. 여성 보호에 대한 반대[편집]
한국에서 무조건 여성을 보호하려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보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위에 열거된대로 페미니즘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상당수의 페미니스트들은 "약한 여성은 무거운 짐을 들면 안된다", "약한 여성과 싸워서는 안된다"는 등의 발언은 여성을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를 받는 약자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소산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여긴다. 태생적인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있는 만큼 모든 페미니즘에서 여성에 대한 보호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 자체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에 한해서는 여성에 대한 차등적 보호를 지지하는 입장이 상당히 힘을 얻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여학생 휴게실'도 여학생을 과반공동체의 주류에서 유리시키며 스스로를 스스로가 만든 차별적 틀 속에 가둬놓는 장소지만 여학생의 쉴 권리 보호라는 측면에서 생겨나 많은 부분에서 남여학생의 차별이 해소된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해 신체를 단련하고 힘을 기를 것을 강조하며, 많은 경우에 군대 역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에는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직업군인으로 여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여성단체에서 여성의 평등한 군 참여 확대를 주장하며 운동을 벌인 바 있으며 심지어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여성징병제에 찬성하는 것이 주류는 아니다. 이는 대다수 여성주의 단체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군인이 되도록 나라에서 강제하는 징병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 여성vs남성 구도 대신, 남성"도" 권력관계에 인한 탄압을 받는다고 보는 쪽이다. 극단적으로는 군대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당연히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모병제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징병제가 없어지기 힘든 우리나라의 경우 징병제를 폐지하는것이 우선이지 여성의 징병을 찬성할 수는 없다는 주장은 불가능한 경우를 전제로 여성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회피하는 주장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 남녀의 평등을 원하며 징병이 없어지길 원한다면 일단 여성이 징병에 참여한 후 남녀의 군복무기간을 낮춘 다음 한목소리로 점진적인 폐지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4.2. 언어[편집]
과거에 당연한 듯이 쓰였던 단어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많은 것에 주목, 이를 성평등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ex) fireman → firefighter, 남녀평등 → 성평등, policeman → police officer
다만 과격파들은 사피어-워프 가설을 맹신하며, 언어를 교체하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사회에 뿌리박을 수 있다는 1984적 발상을 추종하고 있다. 이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언어 생활을 자신들의 관점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ex)섹스에서 "삽입"을 "흡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남녀'라는 말이 성차별적이므로 '여남'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적인 문제는 그 자체로 남녀의 평등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데다 , 남녀나 여남같이 어순의 차이의 경우 둘중 어느성별은 반드시 앞으로 와야한다는 점에서 바꾸는 것에 설득력이 없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고싶다면 이러한 말꼬리잡기에 치중하기보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 집중하는 일이 옳을것이다.
4.3. 집안일과 사회활동[편집]
“설거지, 세탁, 화장실청소, 기저귀 갈기 같은 집안일은 창조성도 필요하지 않고 더럽고, 명예도, 돈도 되지 않으며 일생을 바쳐도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육체노동이다.” - 와카쿠와 미도리
초등학생 2학년 아들과 4개월 된 딸을 키우는 38세의 전업주부의 경우 음식 준비 및 정리 시간 3시간 30분 *세탁, 다림질, 바느질 등 의류관리 1시간 30분 *청소 및 정리 40분 *시장 보기 등 가정관리 관련 물품 구입 30분 *가계부 정리, 은행, 관공서 일 보기 등 가정경영 30분 *미취학 자녀 보살피기 5시간 * 초등생 자녀 보살피기 2시간 *배우자 보살피기 20분으로 김씨의 1일 총 가사노동시간은 14시간.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432만 9000여 원이 된다고 한다. -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산정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대개는 밥을 먹기만 하는 쪽은 남성, 밥을 해야만 하는 쪽은 여성이다. - 조주은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에 종사하는 것을 남성중심사회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보고 있다. 가사노동이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격하시키고, 여성을 집 안에 묶어놓고,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구조적 억압이라는 것. 가사일=쓸모없는일이라기보다는 가사일=하찮은 일=근데 여자는 무조건 해야함 왜냐면 여자일이니까 라고 박혀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여성을 억압해왔다는 쪽이다. 다시말해 이렇게 구조화된 억압으로서의 가사일이 여성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주장. 따라서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이 집안일에서 해방되어 자아 실현과 자기 가치의 발견을 위하여 사회활동에 진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관점은 이 역시도 가사노동이나 육아, 즉 돌봄노동을 하찮고 능력없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현재의 페미니즘에서는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직업이 있는 여성 vs 전업주부의 구도를 폐지하려는 추세. 집안일과 주부를 가사노동과 가사노동 종사자라는 개념으로 대치시키는 것 역시 페미니즘의 과제 중 하나이다.
4.4. 임신과 출산[편집]
여성억압의 원인은 생물학 즉, 언제나 여성의 운명이라고 해온 불공평한 임신에 있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 Stone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생물학적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아동 양육은 여성의 자주적인 삶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나 이건 여성이 여성으로써 생물학적인 숙명이다. 임신은 기본적으로 여성만 하는 것이므로 억울하지만 여성에게만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임신과 출산은 공적 사회 영역에서 여성이 출세하는데 방해가 되며, 아동 양육 또한 여성의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아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나큰 장애를 만든다.
따라서 궁극적인 여성 해방은 과학적 방법(인공자궁의 개발 등)을 통하여 임신과 출산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이후로는 인기가 시들한 상태이다. 현재 주류 페미니즘계에서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 아니라면 육아는 신성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6] 당장 여성계에서 모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비혼을 끝끝내 고수하며 결혼보다 비혼이 낫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많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즘이 주류였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대놓고 결혼은 비혼보다 못하다고 발언하면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의 육아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음을 주목하자.
4.5. 한국[편집]
동남아에도 우리나라보다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나라가 많습니다. - 오한숙희
동남아 어느 국가입니까? - 전원책
... - 오한숙희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녀평등지수가 2012년 기준으로 135개국 중 108위를 차지하였는데,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국가는 동남아시아에는 없다. 아마 이 통계자료를 근거로 이렇게 발언한 듯. 반면 UN에서 발표한 성불평등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7위로 미국, 뉴질랜드보다 높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보다 남성과 여성이 더 평등한 나라가 된다.
여성은 강간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 사회의 억압 때문에 이 사실을 대다수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말하지 못한다. 특히 성추행의 경우 100%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요새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신고 건수도 늘어나고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다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신고까지는 아닌 것 같고 가만 있기엔 찝찝해도 가만 있게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과격파 페미니즘에서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남성우월주의[7]가 국가주의를 동원하여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한국을 여성이 포함된 공동체라기보다는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남성 만의' 공동체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과격파를 한국 페미니즘 전체로 확대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의 페미니즘도 그렇게 좁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성향의 영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을 전개하는 에코페미니즘 계열, 기존의 리버럴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자들 등 그 스펙트럼은 서양의 그것과 비교해 많이 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조금만 이 분야를 뒤져 보아도 남성들도 납득 가능한 논지의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 알려진 여성가족부 이미지로 한국 페미니즘의 이미지가 굳은 것은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가 만들어지면서 이 부서의 주류를 꿰찬 것이 상~중산위층 중심의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초기 페미니즘의 한계로 지적되는 상~중산층 이상 여성 위주의 특권의식과 다른 부류의 약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그대로 지닐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는 그 외의 부류의 페미니스트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않지만, 공인된 정부 부처인 만큼 여성가족부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므로 오히려 다른 파벌은 비주류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소위 '남성도 납득할 수 있는 논지의 주장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비주류 그룹이나 개인적인 활동에 불과하여, 법안 제출은 커녕 제대로 활동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입장에 있다.
4.6. 원시 모계사회[편집]
남성 사냥꾼이 먹여살리는 일부다처 부계사회가 있었다는 기존 학설의 반박으로,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원시 공산주의'와 비슷한 주장. 원시시대에는 모계사회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래 사회 형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계사회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남자든 여자든 사이좋게 채집하며 살았다고 한다. 원시인이 사냥을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당장 현대인이 고기를 풍족하게 먹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봐라
남성이 사냥을 담당했던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편견과는 다르게 채집으로 채취하는 식량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또한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사냥을 담당하게 된 이유는 공동생활을 했던 사회에서 아이들을 '공동체의' 어린 개체라고 인식하게 되는 남성에 비해 배 아파서 아이 낳는 여성은 공동체보다는 자신의 아이라고 먼저 인식하게 되어 사냥 후 이기적으로 획득물을 나누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 카더라.(출처 필요)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풍부한 단백질원이 되는 고기의 경우 이렇게 분배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치명적 불평등이 생겼을 것이다.
5. 비판[편집]
5.1. 성 소수자와의 관계[편집]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의 권익 집단과도 긴밀한 연대가 있기도 하다. 이는 페미니즘이 섹슈얼리티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 하지만 (특히) 서구의 경우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 중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들도 많고, 자신들만의 권익에 치중하는 경향도 존재하므로 꼭 긴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바이섹슈얼/게이/레즈비언/스트레이트 활동가들 사이의 반목은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골치아픈 문제.
성 소수자 운동가들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조와 사회 구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류 사회와 투쟁하여 권리를 쟁취한다는 '전략적 목표'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정치적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성 소수자 가운데도 보수적인 사람은 존재하고, 성 소수자 운동에 끼어드는 페미니스트들을 안 좋게 보는 성 소수자들도 존재한다. 특히 남성 성 소수자(게이)의 경우 소위 말하는 '여성혐오 꼴마초'인 게이도 적지 않다.
컬츄럴 페미니즘의 일종으로, 남녀관계 자체를 남성의 여성 지배로 파악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랑을 하겠는 뜻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레즈비언이 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뭔가 이상한 짓으로 느껴지는 건 당연한데, 한때는 이런게 굉장한 유행으로서 이런 운동 때문에 '페미니스트=레즈비언(…)'이라는 잘못된 편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일제강점기 때도 이런 걸 다룬 B사감과 러브레터 같은 소설이 국내에서 출간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풍조가 그렇게 낯선 건 아니다.
5.2. MTF 트렌스젠더와의 관계[편집]
그런데, 성 소수자와 페미니스트들의 동맹이 이루어지면서 뜻밖의 마찰이 나타났다. 페미니즘에서 MTF 트랜스젠더를 적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MTF 트렌스젠더는 "전통적으로 여성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취하는 것을 굉장히 선호한다. 이는 자신들이 "여성"임을 강조하는 MTF 트렌스젠더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즉, MTF 트렌스젠더들이 자기자신을 '여성'으로 만들어낸 모습은 '전형적인 여성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페미니스트들은 MTF 트렌스젠더들이 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것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그런데 MTF 트렌스젠더들은 '남성성'을 의학적으로 제거하고 '여성성'을 택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서 부정하는 '여성성'의 존재를 옹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젠더'가 단순히 사회적 관점이며 '남성성'과 '여성성'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페미니즘 철학 체계에서, MTF 트렌스젠더의 존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순'이 되어버렸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은 MTF트렌스젠더들이 여성의 복장을 입거나, 성전환 수술을 함으로서 스스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남성이 전통적인 여성성을 옹호하는 행동으로 파악함으로서 페미니즘 철학 체계 내에서 MTF 트렌스젠더를 인식하는 방향성이 정해졌다.
페미니스트 집단에서는 MTF 트렌스젠더를 "의학의 힘으로 여성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행동", "여성 사회에 침입하려는 남성"이라고 부르면서 맹렬하게 적대시하게 된다.언제는 성소수자 지지한다면서 약주고 병주고 다한다. MTF 트렌스젠더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으므로, 상호간의 인식 괴리부터가 너무나 커서 도저히 화해와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 결과, 페미니스트들과 MTF 트렌스젠더는 상호 간에 맹렬하게 적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MTF 트렌스젠더들은 LGBT 라인과 연계한 페미니스트들의 적대 의식 때문에 성 소수자 집단에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현재 LGBT 라인이 비교적 확고하게 형성되면서 점차 다른 성 소수자 집단과 함께 협력 관계가 되었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은 MTF 트렌스젠더들과는 거리감이 있다.
사실 과거도 아니고 래디컬 페미니즘 쪽에서는 여전히 반성 없이 적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인 주디스 버틀러 정도가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에게 호의적인 견해를 표출한 거의 유일한 저명 페미니스트.
5.3. 남성 페미니스트[편집]
고정관념과 달리 남성 페미니스트들도 많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을 옹호하는 운동이 아니라 고전적 성 역할 전반을 비판하는 운동이다. 고전적 가부장제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희생자라는 시각을 가진 남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에 동조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감독 중에서는 간혹 반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고 지적받는 인물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감독이 김기덕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김기덕이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폭력을 솔직하게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어찌보면 이런 적나라한 묘사 자체가 위선적인 형태의 폭력에 대한 고발일 수도 있는 셈. 사실 김기덕 작품은 페미니스트 뿐 아니라 남자가 봐도 불쾌하다. 그리고 어차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간혹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다.
그 대척점에 선 감독이 홍상수 감독이라고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작품을 보면 홍상수라고 딱히 페미니스트인 건 아니고, 냉소적 시선을 가장하긴 하지만 지식인-중산층 남성의 성적 환상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 내용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반 페미니즘적인 감독이라고도 볼 수도 있는 등, 애매한 구석이 있다.
5.4. 속칭 '꼴페미' 문제[편집]
보통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페미니즘 관련 논쟁은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여성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짝퉁들[8]과, 성평등에 있어서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 혹은 모든 것을 일단 여자나 페미니스트의 잘못으로 돌리고 보는 이들이 대립하면서 결국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는 한국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의무는 뒷전이고 여권만을 강조하다보니 생겨난 문제점이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국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을 악화시키고, 결국엔 쉐미니즘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어에 이미 페미나치라는 용어가 만들어져 페미나치즘(feminazism.feminism+nazi), 페미나치스트(feminazist)[9]란 파생어도 추가되었을 정도. 요즘은 Feminazi는 잘 안 쓰이고, SJW라는 말이 잘 쓰인다. 사회정의구현 전사들(Social Justice Warriors), 으로 LGBT 운동가등을 싸잡아서 비웃을 때 쓴다.
이렇게 극단화된 페미니즘은 분명 문제이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페미니즘에 대해 안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분명 이들의 행적은 과장되어 있고 소수의 병크가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일은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여가부만 아니었어도
본 항목의 많은 부분에서 굳이 극단적인 주장을 수록해 놓은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여가부의 병크와 더불어 극단적인 사례들이 수집되어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유포되어서 그렇지, 레디컬(급진주의) 페미니즘 계열의 주장은 같은 페미니스트 진영 사람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항목을 읽는 위키러들은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강조하지만 페미니즘의 목표는 성평등이다. 여성 차별 개선뿐만 아니라 남성의 역차별 개선 또한 페미니즘의 목표이며, 실제로도 오늘도 수많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이 분야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상적인' 사상이지만, 그 사상을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는 결국 인간이고 오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이상적인 사상을 따른다고 반드시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나타났다. 당연히, 페미니즘을 실천한다고 페미니스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언제나 올바른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5.5. 검열 문제[편집]
포르노 및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매체에 대하여 페미니즘이 중심이 된 반대 운동은 미디어에 대한 검열을 옹호하는 주장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기사
이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페미니즘은 검열과 억압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참조)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미디어는 무엇이 되었건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로 나누어져 있으며, 특별히 통일적인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페미니즘이 성해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페미니즘 이름을 참칭하는 인간들이 검열을 시행하는 요직에 앉아있기도 한지라(...).
자유, 평화, 인권은 약자에게만 보장되어야 할 가치이지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권리일 때 권리들 사이의 충돌로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강자(주류, 서구, 남성, 서울…)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테러이며 테러라고 불리는 저항(폭력)을 초래한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누가 약자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부터가 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표현의 자유와 표현하는 사람 / 정희진 | 여성학 강사(2015-02-12 21:10:50)
참조
2015년에 여성학 강사 정희진은, '인권'은 '약자'에게만 보장되어야 하며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며, 강자(주류, 서구, 남성, 서울)가 행사하는 '표현의 자유'는 '테러'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누가 약자이고 누굴 정하는가는 '정치'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강자가 표현의 자유 등을 방패삼아 고인드립, 패드립 등을 늘어놓으면 그건 폭력이겠지만, 그 "강자"의 범주에 "남성"을 집어넣음으로써 몇몇 사람들은 "그러면 남자한테는 자유 보장하면 안 되겠네? 흠좀무"하는 리액션을 보일 여지가 있는 미숙한 표현이다. 말솜씨가 없는 사람한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팀킬이 된다. 그리고 자유, 평화, 인권이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는 발언은 전형적인 언더도그마이다.
5.6. 국내 문제[편집]
한국은 남성에 한해 시행되는 징병제로 인해, 남성과 여성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고, 반대편에는 '남자가 군대가는 게 당연한데 난리를 친다'는 식의 잘못된 페미니즘을 방어논리로 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페미니스트들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문제다.
군대를 선택하지 못 한 다는 것에 대해서 개개인의 국민이 선택할 자유라는 기본권이 박탈당한 셈이며, 남성만 가야 한 다는 것도 평등권 침해다. 더더욱이 사실상 군대에 대한 보상이 전무한데 비해서 소위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으로 남성들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커녕(주장하더라도 미지근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는 실정이다. 남성성의 자연스런 일부라는 주장 역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분담을 인정하는 사고이며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한다라는 결론이 나오므로 페미니스트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이론의 기초가 박살나게 된다.
다만 징병제로 인해 남녀를 동일선상에 둘 수 없다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도 아니며, 꼭 여성의 평등권에 일정한 제약을 줘도 된다는 주장도 아니다. 성차별 문서의 병역 항목에서도 거론되고 있듯이, 남녀평등에서 군징병제가 문제시 되는 이유는 군 징병으로 인해 남성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침해받는 남성의 기본권에 비해 여성의 기본권은[10] 침해받고 있지 않기에 여성의 기본권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11]
남성이 징병제의 대상(즉 일방적인 병역의 의무를 지는 상황)이 될 경우, 2년간 '자유권' 전반, '노동권' 전반, '평등권' 전반에 거쳐 제한과 차별을 받게 된다. 조금은 생소할 노동권에 대해 부가설명하자면 일단 일반 병사의 노동시간은 어지간한 노동자보다 길며,[12] 헌법에서도 보장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당연히 경계작전, 숙영 등의 야전 훈련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야간 근무에 대한 수당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13] 그리고 징병된 기간에는 자기가 종사하고 싶은 직업에 대해 취직의 기회가 생겨도 직업을 선택할 수 없다.(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이미 남성의 주요한 기본권이 2년간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고, 여성은 이렇게 병역의 의무로 인해 남성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동안 아무런 제약이나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병역의 의무는 남성들에게만 부과되기 때문에 여성들에겐 의무가 없이 권리만 주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남성이 '우리는 사회의 유지와 국가의 안녕을 위해 이러한 희생을 하였다. 여성들은 우리가 진 병역의 의무 만큼 사회의 안녕을 위해 무엇을 (강제적으로)하였는가?'[14] 하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면 여성은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남성이 지고 있는 병역의 의무를 등치할 수 있는 여성의 다른 의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15]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에선 병역과 성평등, 성차별을 떨어뜨려두고 생각할 수 없다.
이는 남성의 병역문제에 최저임금이 도입되고 군생활 복지가 개선되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강제니까. 강제라는 데서 이미 병역의 대상이 되는 남성은 현대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 하나인 자유권을 침해받는다. 이와 관련해서 임신과 병역을 가지고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임신은 선택의 문제이므로 동일선상에서 논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리고 사실 임신 대 병역 떡밥은 그냥 어그로를 끌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으며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군가산점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처음 한 사람은 여성단체의 일원이 아니라 군가산점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한 한 지체 장애인이다. 군가산점은 사실 군대에 가고 싶으면 여러 방법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여성들보다는 절대로 군대에 갈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차별 요소로 다가온다. 하지만 군가산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여성 단체이며, 여성 단체에서는 군가산점 폐지를 하나의 '업적'으로 보고 있으며, 군가산점 재도입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발하고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않는 것도 사실이므로 최초의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여성 단체에서 군가산점 폐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큰 영향을 행사한 것은 맞다.
또한 가산점 문제에 국한하여 이야기하자면, 페미니즘에서 이를 봉건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군역을 남성만 짊어지는 사유는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따르면 '남성의 신체적 특성'을 사유로 하고 있으므로 남성성 때문이다.
아무튼 성평등을 위해서라도 군 문제 해결에 힘을 합치는 것이 발전적인 방향이라는 게 양측의 온건적인 입장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은 극단적으로 군 자체가 남성, 여성을 비롯한 모든 피지배계급에 대한 탄압기관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배척당하거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모병제나 군 내 복지 개선 등을 함께 외치는 페미니스트들이 온건한 편. 그리고 여성혐오분자들은 한국인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며 병영부조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한국은 같은 여성이라도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못 배우고 가난한 여성들의 인권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인데, 배우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여성들만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이제는 남성이 역차별 당하는 모계사회라고 착각하는 남성들도 있지만 당장 대학에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현장실습을 나가보면 빈곤층 여성들의 인권은 2014년 시점에서도 여전히 답이 없는 수준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 매맞은 여자가 어딨냐. 당장 고소하고 여성부 진정하고 난리날 거다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건 큰 오산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인권의식과 평등 주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문제는 그게 골고루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못 견뎌서 쉼터로 도망치는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 초, 중졸 학력에다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다.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다문화가정를 이루고 사는 여성의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심지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면 그걸 경찰에 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이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을 페미니즘의 주류에서 다루지 않고 자꾸 빈곤층 문제로 미뤄버리면서 사회복지 차원에서 해결하라고 외면하는 통에 동호회 수준의 여성단체만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단체들은 거창하게 여권신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시키는 게 주목적인데 사회지도층 여성들은 이런 소외계층 여성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라 이들 단체의 활동영역은 민/관 쉼터로의 연결 혹은 법적인 자문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16]
정리하자면, 기득권을 차지한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상대적 성 불평등에 대해서는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작 적극적으로 나설 땐 '성평등'만 강조할 뿐 '전체적 평등'은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한다는 것.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는데 여론에서 밀린다(...).
6. 기존 학문과의 충돌[편집]
페미니스트 중 일부는 현재까지 확립된 학문의 기반이 '남성'의 지배적인 위치에 의해 단일한 관점만을 가지고 있는 형태라고 주장하며 현대까지 타자의 시선인 페미니즘에 기반한 학문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이 가치있는 것은 주류의 역사 대신 억압된 소수의 입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배자의 입장이 아닌 민초의 삶을 조명하는 미시사학이나 일상사가 조명되기 시작한 것과 맥락이 같다. 아무 개론서나 펼쳐서 학자들 계보를 살펴보면 알기 쉽다. 대부분의 학자들 이름이 남자이며 후에 소수 재조명된 여성 학자 혹은 페미니즘 챕터가 추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챕터에 페미니즘적 해석이 추가된 앤서니 기든스의 사회학 개론이 대표적이다.
6.1. 자연과학[편집]
위의 에코 페미니즘이나 강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학계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암묵적인 차별을 받아 오고 있다는 주장부터 과학적 방법론이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거나, 과학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무시당해 왔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여러가지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도 그들이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강간 매뉴얼"이라고 비하하고 실험도 논리도 없는 여성과학을 주장하자 그건 여자는 논리력이 없다는 소리랑 똑같은 거임이라는 스티븐 핑커의 말을 인용해 깠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인 뤼스 이리가레이 같은 경우에도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광속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므로 권력적이라고 주장하는 둥, 여학생들은 월경으로 인해 수학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둥 했다가 앨런 소칼에게 걸려서 탈탈 털렸다.
6.2. 역사학[편집]
페미니즘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문명이 시작된 이후 꾸준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 형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는 논쟁거리이므로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이것이 과도하게 변질될 경우 분명히 역사적 근거에 의해 이른바 '악녀'임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우위의 역사관에 의해 오명을 쓴 인물로 고평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종의 '진영논리'로 변질된 셈.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만들어진 경우를 보자면 천추태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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