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대한민국에 골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 박세리는 수 십 년이 지난 2021년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가지를 고백했다. "치마를 안 입는다고 난리를 쳤었다"라고. 짧은 치마로 되어 있는 골프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박세리는 생전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으니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 안절부절 못했었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박세리가 은퇴한 후 5년이 지났다. 그가 처음 치마 유니폼을 입어야 했을 때부터 환산하자면 20년도 훌쩍 넘었다. 20년이 지난 세월 이후에도 비슷한 고충을 경험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생겨났다. 얼마 전, 유럽 비치핸드볼 선수권 대회에서 발생한 문제도 비슷하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대표팀이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어 벌금을 받은 것이다.
노르웨이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비키니 하의가 노출이 심하고 유니폼이 불필요하게 성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생리할 때 불편하다"라고 반바지를 입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유로 2021 비치핸드볼 징계위원회는 결국 이러한 복장이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노르웨이 여자대표팀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그들이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벌금을 부과받을 때, 같은 종목에 뛰는 남자 선수들은 헐렁한 바지에 헐렁한 나시를 입고 경기를 이어나갔다.
'치마'는 '인간 박세리' 대신 골프를 쳐주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비키니는 비치 핸드볼 선수들 대신 경기를 뛰어주지 않았다. 필드에서 승리를 위해 뛰는 선수들에게 치마나 짧은 비키니는 걸리적거리고 불편한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박세리를 골프계의 신화로 만든 것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뛰었던 시간이지, 옷이라는 천 쪼가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는 여성 선수들에게 필드에서 '선수' 대신 '여성'으로 보이기를 강요한다. 마치 선수의 얼굴과 유니폼이 선수 대신 스포츠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실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잘 꾸며도 욕을 먹었다. 경기장 위에 올라와 미디어에 노출되는 순간,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예쁘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들었고, 경기에서 진 순간 "외모 꾸밀 시간에 노력이나 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하다못해 올림픽 중계까지도 "미녀 검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얼평'을 한다.
꾸미면 꾸민 대로, 꾸미지 않으면 꾸미지 않는 대로 여성 선수들은 욕을 먹었다. 여성의 꾸밈을 강요하는 각종 규제는 덤이다. 외부에 노출되는 모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시선이 스포츠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화장은 예의라서 무조건 해야 하지만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워야하며, 적절히 '여성스러워' 보여야 하지만 지나치게 멋을 부리면 안 된다는 기준. 사실 그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트렌데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딧에 올라온 MBC 올림픽 개막식 논란 (0) | 2021.07.28 |
---|---|
황선우가 3m 수영장에서 훈련을 제대로 못해본 이유 (0) | 2021.07.28 |
펨베 펨코에서 안산 선수 악의적 루머 유포중 (0) | 2021.07.28 |
독일 여자유도 경기전 준비 (자 긴장 풀고) (0) | 2021.07.28 |
우유 아무거나 마시면 안되는 이유 (0) | 2021.07.28 |